[담임목사] 구약의 제사와 예배-번제
- 글쓴이 헝가리선교사 날짜 2013.08.12 17:36 조회 2,542
우리는 요한계시록 4장을 통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막힌 방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심지어 이 모습은 주변에 있는 여러 나라에게는 부러운 일이었고 심지어 두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놀랍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그리고 이 계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예배의 공동체로 세우셨습니다.
레위기 26장 12절 말씀에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을 선포하신 곳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인 성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을 이스라엘 가운데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예배 공동체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신실하게 지킬 때에는 하나님께서 레위기 26장 11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가치인 예배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기준은 성경이고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올바른 신앙의 행위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서 예배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은 신약보다 구약에 더 깊이 그리고 자세히 언급이 되어 있고 특별히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대해서 우리에게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5주 동안 레위기를 통해 성경적 예배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때론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기쁨과 감격이 있을 것이고 아울러 무지함 때문에 범했던 과오를 발견하며 괴로운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레위기를 유심히 보면 첫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가 “제물”이란 단어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만 제물로 삼게 하지 않고 기르기 어렵고 다루기 어렵고 심지어 위협적인 동물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면 얼마나 큰 문제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동물에게 안수를 해야 하고 급기야 그 동물을 죽여야 한다면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르기 쉽고 안수하기 쉽고 제물로 쓰기 쉬운 온순한 동물만 제물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졌던 짐승들의 면면을 보면 예수님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소에게서는 강함과 근면과 봉사와 희생을, 둘째 양과 염소에게서는 순함과 순종을, 셋째 비둘기 속에서는 온유와 순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예수님의 성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본성이 예수님처럼 길들여질 때 혹은 변화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질 수 있게 됩니다.
레위기서에서 두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가 ‘피’입니다. 소의 피, 양의 피, 염소의 피, 비둘기의 피 등이 바로 예배자의 죄를 사해 주는 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용된 구약 성경 레위기서의 짐승의 피는 신약에서의 예수님의 피를 예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짐승의 죽음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죽음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짐승의 피의 유효 기간은 1년이지만, 예수님의 피의 유효 기간은 영원한 점이 다릅니다. 짐승의 피는 우리의 죄를 잠시 동안만 가리 울 뿐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단행한 마틴 루터는 ‘빨래를 짜 보아라. 물이 나올 것이다. 구약성경을 짜 보아라 짐승의 피가 나올 것이다. 신약성경을 짜 보아라. 예수님의 피가 나올 것이다.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하면 영적 장님이다.’라고 했습니다.
레위기서에서 세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제사”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제사’를 유교의 조상 제사나 무속신앙의 제사 혹은 고사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제사는 도무지 우리가 믿는 신앙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거부감마저 드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 레위기서에는 성경의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제사입니다. 레위기에 언급된 5대 제사들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라고 알려줍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의 얼굴에 덮여있던 수건을 벗고 구약 성경에 있는 5대 제사법을 보면 죄인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 번제물 되신 예수님, 둘째, 소제물 되신 예수님, 셋째, 화물제물 되신 예수님, 넷째, 속죄제물 되신 예수님, 다섯째, 속건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것을 볼 수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번제는 레위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제사가 가장 흔한 제사이며 아침저녁으로 드려지고 성일에는 보다 자주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번제는 다섯 종류의 제사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요 중심적인 제사의 형태였습니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아라’라고 하는데 이것은 ‘올라간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 위에서 제물을 불사르는 것은 멸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제물을 태워서 더욱 고상하게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을 가져다 안수하고 잡아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사방에 뿌리고,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씻기도 하여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리면 이것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온통 피가 흐르고 짐승 타는 냄새로 가득합니다. 특별히 번제는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제물을 전부 태우는 데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전가 받은 제물의 모든 것을 태울 때 불과함께 인간의 모든 죄가 태워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번제에는 “늘 드리는 번제”와 개인적으로 드리는 “일반번제”로 구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늘 드리는 번제는 이스라엘이 집단적으로 제사장을 통하여 매일 아침 끊임없이 드려야 하는 제사이고, 일반적인 번제는 때를 따라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제사는 소와 양과 염소, 그리고 새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소와 양과 염소는 흠 없는 수컷이어 하고 새는 집비둘기의 새끼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번제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회막 문에 섰을 때 제사장은 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머리에 안수를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이것은 ‘죄를 전가 한다’라고 표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불태울 때 죄도 같이 도말된 것으로 여겨주셨습니다.
특별히 늘 드리는 번제를 상번제라 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자녀들과는 별도로 제사장이 아침저녁으로 항상 드렸던 번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번제단에는 언제나 불이 켜져 있어야 했습니다. 절대로 꺼뜨려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상번제의 제물은 오직 흠 없는 수양이어야 하며 또 일 년 된 어린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양은 소나 염소나 비둘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온유, 겸손뿐만 아니라 순결과 인내와 순종을 나타내는 동물로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제물로서는 가장 완전히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케일이라는 신학자는 “번제는 여호와께 완전한 복종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길을 걷겠다.”는 약속의 제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번제는 죄인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통해서 정결케 되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여기에 예배의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 드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자신이 달성하기 원하는 목표나 혹은 소유하고 싶은 대상을 얻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모든 것이 바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고 또한 사람들의 자기만족에 집중되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자신의 온전한 헌신과 감사와 복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를 받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제사장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에 안수를 하고 난 후 그 제물을 제사장이 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소와 양, 그리고 염소는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직접 잡았습니다. 하지만 새의 번제는 제사장이 잡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교회에는 스스로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믿음이 연약하여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스스로 헌신할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사람들이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교회에 처음 등록한 사람이 신앙생활 할 때 믿음이 연약하다고 해서 마땅히 행해야 할 신앙적인 자세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중에 교회를 오래 다니면 스스로 터특 할 것이라 혹은 교회를 오래 다녀서 거부감이 없을 때 신앙적인 자세들을 가르치면 될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안하는 것을 나중에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성경 읽는 것, 봉사하는 것, 헌금 드리는 것 등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자세히 가르쳐야 됩니다.
구약에서 언급된 제사는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재정하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난 후에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번제로서의 예배는 오늘날에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한 헌신과 감사, 그리고 복종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자원하는 예배, 그것이 번제로서의 예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예배를 위해서 시간을 구별하고 자신의 삶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