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심판의 때를 준비하는 교회
- 글쓴이 헝가리선교사 날짜 2013.07.17 21:06 조회 1,763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바벨론이라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을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힘찬 음성으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너졌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페센’이라는 말로 시제가 부정과거 입니다. 이는 지난주에 함께 말씀을 통해서 나누었던 것처럼 바벨론의 멸망은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 사건임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바벨론이 무너진 이유가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음행을 행하였고 세상의 통치자들도 이 일에 합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물질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물질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절대가치라 여겨지던 권력과 돈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6절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고 있는데 8절에 기록된 심판의 내용을 보면 “사망, 애통, 흉년, 그리고 불에 살라지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세력이 심판을 당하는 사건에 대해서 8절에는 하루 동안, 10절에는 한 시간에, 17절에도 한 시간에, 19절에도 한 시간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토록 믿고 신뢰했던 권력과 부가 짧은 시간에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 11장에 세워진 바벨탑의 사건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홍수의 심판을 겪고 난 후에 바벨탑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고 또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벨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권력과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과 돈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탑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 악한 것을 보시고 그 탑을 건설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만드는 데는 막대한 자금과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교만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멈추게 하시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돈과 권력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세운 모든 것들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4절에 ‘거기서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심판을 당하는 당사자인 음녀 바벨론은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 스스로가 왕임을 자처하며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을 의지하고 그것이 자신을 애통함 가운데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루 동안’에 패망할 만큼 하찮은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음녀 바벨론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음녀 바벨론의 심판을 보면서 회한과 후회가 담긴 고백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큰성 바벨론이 무너진 것을 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권력을 자신의 신으로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전 세계를 제패한 로마도 결국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로마에는 이제 옛 영화를 드러내는 유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또한 그 유적 위에서 엄청난 사치와 부패를 일삼았던 이태리도 국가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땅의 상인들도 바벨론의 멸망을 보면서 울고 애통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품의 거래를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상품 거래가 되지 않자 망하게 된 것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의 그 부요함이 순식간에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와 사치와 향락을 가져다주었던 모든 수단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시편 49편 6절-8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물질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지 않고 또한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물질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는 말씀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께서만이 우리의 삶의 가장 우선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17절 말씀을 통해서 보면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도 바벨론의 심판을 보면서 울고 애통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배는 교역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선주와 선장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교역대상이었던 바벨론이 불에 타는 모습을 멀리서 보는 선주와 선장들은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 세 그룹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바벨론과 연합하여 음행했던 사람들입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세상의 쾌락에 빠져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자신들의 운명도 기울게 되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자신들이 절대가치로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애통하며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말씀을 잘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애통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심판을 인하여 가슴을 치며 애통한 것입니다. 패역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1절부터 24절까지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0절의 말씀을 보면 바벨론의 심판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증오로 인한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평가하시고 그리고 보응하십니다. 바벨론의 불의한 핍박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교자들과 믿는 사람들의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것을 통해 믿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신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날은 우리에게 승리의 날이며 기쁨이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21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상용구처럼 “네 안에서”라는 말씀이 반복이 됩니다. 네 안에서 다시는 풍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고, 네 안에서 다시는 세공업자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네 안에서 다시는 맷돌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고, 등불이 다시는 네 안에서 비취지 않을 것이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마치 큰 맷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처럼 바벨론도 바다에 비참하게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그리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쾌락의 풍류소리, 사치 품목 중에서 고가의 장식재를 만들던 세공업자들, 사람들의 식생활과 관련된 맷돌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범위가 영적인 부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동안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가치에 대한 심판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은 바벨론 어떤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생각에 틈타서 그 생각을 부패하게 만들고 급기야 타락하게 만드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방심한 가운데 틈탄 영적인 혼탁함을 인하여 세상의 가치에 눈을 돌리고 거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서두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와 사데 교회의 예를 들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교회는 전부 크고 잘 사는 사람들의 교회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상은 죽은 시체와 같은 교회였고, 토하여 내쳐야 하는 구토 나는 교회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호스피스를 창시하고 죽음의 심리학과 관련된 부분의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큰 상실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잊고 부수적인 것들에 사로잡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큰 상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이 우리 앞에 닥치게 되고 그 때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묻고 그 일을 위해서 살 수는 없게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인간의 전인적 구원을 이야기 한 요한3서 2절에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로 충만해야 할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세상의 가치에 빠져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면 더 이상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더 이상 그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속을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고 그 백성들이 모인 교회로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4절의 말씀처럼 거기서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가치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고 개개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점점 더 큰 것이 아름답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가게도 커지고 식당도 커지고 학교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세력을 키워야만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탁한 세대 가운데 교회도 세상의 가치에 휩쓸려 교회도 점점 커져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 말씀을 준비하기 전까지 이러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큰 교회가 큰일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마다하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고 또한 제자들을 양성할 때 단 12명에 국한하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온전한 부흥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크기의 논리에 빠지면 교회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교회를 크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은행부채에 허덕이며 건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큰 교회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총동원전도라는 이름하에 부적절한 방법으로 전도하는 교회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정신으로만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늘 한 영혼에 대한 가치를 기억하고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질 때 온전한 교회로 설 수 있습니다.
해가 저물면 양을 치는 목동들은 서둘러 양들을 우리로 이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서 자신의 양을 계수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잃어버린 양이 있다면 선한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곳곳을 헤매며 힘을 쓰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들을 잊지 말고 세상의 가치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최선을 다해서 생명의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로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온전한 자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