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요한계시록강해-15 / 완전한 승리를 위해

▷ 본문 :요한계시록 12장 1절 - 17절
▷ 설교자 :전근일 담임목사
▷ 설교일 :2013년 4월 7일 주일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을 은혜 가운데 지냈습니다. 그리고 2주 동안의 공백으로 인해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흐름이 약간은 깨졌을지도 모르지만 다시금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복된 신앙의 모습을 견지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그동안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말씀과는 조금은 다른 진행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굉장히 난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말씀을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심지어 제목도 여러 번 바꾸어 오늘의 제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다같이 따라하겠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를 향한 사탄의 도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본문을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디에도 교회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의 제목이 완전한 승리를 위해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늘 말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늘과 땅을 이분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하늘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사탄이라고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라는 말씀처럼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땅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여인과 용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인과 용이 끊임없이 투쟁하고 그 장소가 바로 하늘과 땅임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복잡한 구조 가운데 오늘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인과 용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은 여인과 용이 투쟁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요점은 여인과 용이며 9절의 말씀을 통해서보면 용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9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그렇습니다. 용은 사탄입니다.

그러면 여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면 오늘 말씀은 굉장히 이상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여인을 마리아로 보는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낳은 아들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존재 즉,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시대의 교부들은 문자 그대로 이 여인의 정체를 마리아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13절의 말씀을 보면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17절의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는 말씀을 통해서 보듯이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가 사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남은 자손들이 사탄과 더불어 싸웠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을 마리아라고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교회 혹은 안상홍 증인회는 이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낳은 여인을 어머니 하나님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듯이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어머니의 남은자손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느 곳을 찾아봐도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지칭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지도 않습니다. 요한복음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셋째, 교회로 보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우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를 이 땅에 태동시키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이를 잉태한 여인은 구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낳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이 구약의 말씀들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를 옷 입고 달이 그 발아래 있다는 것은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두 별의 면류관 역시 영광스러운 교회의 면류관을 상징하는데 열둘이라는 것은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을 보면 이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았다면 이때는 시기적으로 신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17절 말씀을 보면 이 여인의 다른 자손을 언급하고 있고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자들이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명백히 신약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오늘의 본문은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을 읽으면 보다 쉽게 요한계시록 12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여인이 해산하게 되었는데 용이 여자 앞에서 해산할 때에 그 아이를 삼키려 했다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도록 죽이려 하였습니다. 헤롯이라는 왕을 통하여 호적법을 바꾸게 하였고 그리고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에 있는 2세 미만의 남자 아이는 다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온갖 죄목을 덧씨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승리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따르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에 약이오른 사탄은 초점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던 사탄의 전략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로 태어난 교회에 대한 공격으로 입장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낳은 여인이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광야로 도망한 이유에 대해서 7절 그리고 이 광야에 대해서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광야를 예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예비하신 곳이 시설 좋은 5성급 호텔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적군이 몰려와도 안전한 요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예비하신 곳은 광야입니다.

저는 얼마 전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9/11 테러를 일으켰던 탈레반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고 사살한 내용을 다큐 형식을 빌려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잠적한 오사마 빈 라덴을 찾는 것에 집중하고 마지막 부분에 오사마 빈라덴을 처단하기 위해서 특수부대가 작전명 제로니모를 실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는데 그것은 코드네임 제로니모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제로 다크 서티라는 영화와는 달리 빈 라덴의 은신처에 잠입하여 작전을 진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그래서 코드네임 제로니모라는 영화를 보면 빈 라덴의 은신처와 거의 비슷한 건물을 하나 짓고 난 다음에 수도 없이 이를 반복 훈련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가리켜 시뮬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일용할 것의 문제로 고민해야 할 때가 옵니다. 의미의 문제로 고민해야 할 때가 옵니다. 질서의 문제로 인해서 고민할 때가 옵니다. 나를 해하려는 대적의 문제로 인해서 고민할 때가 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할 때가 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길을 걸어갈 때의 상황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양식의 문제로 인해 모세에게 원망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마실 물로 인해서 모세에게 원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광야의 생활 가운데 기적적인 상황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됩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을 해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애굽의 군사들의 위협으로 인해서 큰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약속의 땅은 가나안의 7족속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그들은 온갖 불평을 쏟아내며 서둘러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광야에서 많은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심을 믿으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학습의 효과는 실로 컸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말없이 성을 돌기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리고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큰 함성을 지를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광야는 어떤 의미입니까? 광야는 훈련소였습니다.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하기 위해서 똑같은 건물을 지어서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거듭해서 훈련했던 제로니모 작전과 같이 광야는 훈련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의 위협 가운데서 완벽하게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훈련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공생애 사역에 앞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편안한 곳에서 그리고 풍요로운 곳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우리는 척박한 환경에서 잠시도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절 말씀에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기 위해서 광야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준비가 되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17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는 말씀처럼 사탄과의 최후의 일전도 불사할 각오가 된 전사로 훈련받는 곳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하기 원하셨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하여 가르치기 원하신 것은 바로 신명기 82-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는 삶을 훈련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끄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이끌려서 광야로 시험 받으러 가셨을 때에 마태복음 4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을 삶을 통해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을 말씀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창조의 사역에도 말씀하심으로 나타났고 그리고 에베소서 6장을 보면 말씀의 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의 원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는 넓고 편하고 좋은 곳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좁은 길을 선택하여 그 길을 옹골차게 걸어야만 합니다. 때론 그 길은 좁고 협착하여 걷기에 쉽지 않고 급기야 그 길이 광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광야를 절대로 건너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광야를 피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영적인 군사로 훈련하시기 위해서 예비하신 훈련장입니다.

훈련을 거치지 않은 병사는 전쟁터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그저 총알받이 혹은 아군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와 참소하며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끄는 사탄의 계략에 맞서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광야 훈련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을 사용하여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승리하여 날마다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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