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요한계시록강해-14 / 회복된 그리스도의 나라

▷ 본문 :요한계시록 11장 15절 - 19절
▷ 설교자 :전근일 담임목사
▷ 설교일 :2013년 3월 17일 주일


우리는 920-21절에 대한 답변으로서 10-11장을 살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계속되는 재앙과 심판에도 회개하지 않는 세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 교회가 할 일에 대해서 두 증인과 같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42개월 동안 여러 가지 재앙들이 내려지는 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는 동안에는 영광이 아닌 고난이 임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죽은 것 같은 교회에 생기가 불어와 생명을 얻고 굳게 서는 모습을 성경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굉장한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을 살아가면 필경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 정해진 운명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환영을 받고 영광을 받는 것, 이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얻고 굳게 서도록 만드신다는 말씀은 굉장한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실제로 사도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굉장한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잠시잠깐 있는 지금의 고난을 두려워하여 넓은 길, 순탄한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장차 우리 앞에 임할 영원한 영광을 소유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마시멜로의 실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3~4살의 약 200명 정도 되는 어린 아이를 각각 다른 방에 넣어두고 탁자위에 마시멜로 한 개씩을 올려놓고는 한 여자가 들어가서 난 이제 나갈거란다. 니가 이 마시멜로를 먹어도 좋다. 하지만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는 다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줄게.”라고 이야기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중에 3분의 1은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렸고 3분의 2는 참고 마시멜로를 2개 먹었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14년 후 이 실험의 목적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다시 찾아 성적 같은 것들을 다 비교해 보았더니 마시멜로를 참고 먹지 않은 아이들이 비교적 성적도 높았고 사회성이 뛰어난 청년이 되어있었고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많이 내곤 했다고 합니다. 10년 전 그 실험의 성공을 예비하는 단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일곱째 나팔을 불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배웠던 일곱 나팔의 마지막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일곱 나팔에 대한 내용이 아득할지도 모르니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일곱 나팔의 재앙은 요한계시록 8:1절부터 시작되는데 일곱째 인을 뗄 때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이 됩니다. 첫째 나팔을 불 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 땅의 삼분의 일, 수목의 삼분의 일, 각종 푸른 풀이 탔습니다.

둘째 나팔을 불 때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졌습니다.

셋째 나팔을 불 때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넷째 나팔을 불 때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고 말씀하셨는데 일곱 나팔 재앙 가운데 뒤의 세 재앙은 날아가는 독수리가 선언한 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화는 9:1-12절에 메뚜기가 사람, 즉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인 것입니다.

두 번째 화는 9:13-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만만의 군사가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9:14절에 둘째 화는 지나갔지만 셋째 화가 속히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일곱 번째 나팔이 불어진 상황입니다. 즉 세 번째 화가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본문에서 세 번째 화의 내용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세 번째 화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소망과 위로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부터 19절까지는 심판과 소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두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척박하고 힘들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복음 포기할 수 없는 천국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15절 말씀에 보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렇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1:28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청지기권을 우리 인간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권세를 가지고 있던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를 사탄에게 이양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사건입니다. 결국 이러한 일로 인해서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한 사탄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탄의 종노릇 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사탄을 요한복음 12:31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사탄이 통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할 때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통치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불순종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집니다. 여기서 우리 주와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의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주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결국 세상의 주권이 사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가 왕노릇 하시리로다의 헬라어는 바실류쎄이로써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에게서 되찾은 세상의 주권을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홀로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를 회복하시는 것이 세 번째,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일곱 번째 나팔의 재앙이 될 수 있을까요? 세상 나라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이것은 분명 재앙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세상에 가치를 두고, 영원하지 않은 세상 때문에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틀림없이 재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말씀에 이방인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심판에 대해 이방들은 분노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나라가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내용은 12-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노와 진노는 다른 것입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대적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입니다. 이와 반대로 진노는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갖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세상 나라가 심판을 당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졌던 분노를 그리스도께서 진노하심으로 제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지막 나팔의 재앙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는 심판이지만 우리에게는 회복의 날, 축복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상황이 마지막 심판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0장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그 심판에서 자유할 수 없고 열외도 없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들까지도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은 다시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영원하지 않은 가치를 사용하여 제왕과 같은 영광을 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어 득의양양한 모습처럼 보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렐라이 언덕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덴마크의 인어공주상,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실망스런 관광지로 꼽히는 곳으로 요정의 바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와 같이 전설에 의하면 뱃사람들이 이 언덕을 지날 때 요정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노래에 취해 뱃사람들이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배는 암초를 만나 좌초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마치 이 전설의 내용과 같이 세상을 향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환상이 이러한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좋아 보이고 갖고 싶고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세상의 가치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흔들리고 그리고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주님의 길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씀할 때 16절부터 24장로가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바로 감사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한계시록에 감사하다는 말은 여기에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감격스러운 고백을 드린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을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한계시록 1:8절과 48절을 보면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장차 오실 이가 누락이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이루어지면 장차라는 말은 필요치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어질 때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1260일의 기간을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상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그 상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실망하시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구원! 즉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그것이 가장 큰 상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부자라서 집을 사줄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집을 살 때 예전에는 청약이라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집을 청약할 때 계약금을 냅니다. 그리고 대략 2-3년 가까이 중도금을 갚아나갑니다. 그리고 입주할 때 잔금을 치룹니다. 그런데 중도금을 갚을 때 얼마나 힘듭니까? 포기하고 싶은 상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입주할 때 그 모든 어려움을 참고 이겨냈음을 대견스러워하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천국의 영광을 상급으로 허락하십니다.

19절을 보면 이십 사 장로가 찬양하고 나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이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1:22절에는 분명하게 하늘에는 성전이 없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언약궤를 보았습니다. 이 언약궤는 구약에서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는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의 침략으로 성전이 소실 될 때 파괴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 앞에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완전하신 보호와 임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가올 시험과 환난 가운데 지성소의 언약궤 앞에서 만나주시던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언약의 상징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골로새서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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