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요한계시록강해-11 / 지금 우리가 할 일

▷ 본문 :요한계시록 9장 20절 - 21절
▷ 설교자 :전근일 담임목사
▷ 설교일 :2013년 2월 24일 주일


지난 주 우리는 요한계시록 9장의 말씀을 통해서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회개는 두 가지 측면으로 첫째, 믿는 우리에게는 날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 책망할 것이 없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둘째,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끌리어 자신의 삶을 돌이키는 회심의 사건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을 마지막에 여러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3:13절은 우리에게 피차 권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끊임없이 요한계시록은 소망의 책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소망의 날은 또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증거 하는 가운데 그리고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설교를 준비하는 가운데 이 소망에 대해서 올바르게 증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셨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악 가운데 영원한 사망을 얻게 되었음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 가운데 머물지 않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너무도 많이 들었던 내용이며 이 사실을 우리는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의 정수라 이야기 하는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보면 위에서 이야기 한 모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위에 열거한 내용 가운데 요 3:16의 말씀을 비추어볼 때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길 원하시는 사람은 믿는 자마다입니다. 영어성경 NIV에는 ‘whoever believes’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π?? ? πιστε?ων으로 ‘everyone who believes’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뒷받침 하는 말씀은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록된 누구든지 부르는 자는헬라어 π?? γ?ρ ?? ?ν ?πικαλ?σηται라는 말씀으로 요한복음 3:16자마다라는 말씀과 똑같은 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인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던 사도바울은 혈통적으로 인방인인 우리에게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은혜는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그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무론하고 인종의 차별이 없이 다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요한계시록 9:20-21절로 돌아와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8장과 9장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곱 나팔의 재앙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지난주 설교를 마쳤습니다.

저는 요사이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면서 매주 요한계시록을 1장부터 22장까지 읽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이 참으로 중요한 것은 마지막 때 되어질 일들에 관한 것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말씀이기 때문에 해석에 있어서 오류가 없도록 그리고 치우침이 없도록 말씀에 입각하여 여러분에게 전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설교를 마치고 다시금 요한계시록 9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20-21절의 말씀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정말 잘 들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타 주석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복음적인 내용이며 요한계시록 안에 명시된 말씀을 근거로 드리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알려주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확신과 함께 이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합니다.

요한계시록 7:14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로 그들은 환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온 시점에 대해서 큰 환난이라고 사도요한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종말에 겪을 환난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큰 환난에 해당되는 헬라어 테스라는 정관사가 사용되어 특정한 사건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큰 환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온 사람들은 나팔의 재앙에 죽지 않은 사람들로 자신들이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 살인, 복술, 음행, 도둑질을 행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5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아직 마지막 재앙이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그 재앙 가운데 다 멸망 받아야 할까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 세상의 큰 혼란이 드리워질 때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부분에 대한 해결책으로 종교적인 성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또한 많은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영성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특히 다니엘 핑크라는 학자는 사람들은 갈수록 의미를 추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융이라는 학자가 사람들은 물질적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으로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난 본연의 목적의식을 추구하는 본성적 욕망을 가진다라고 이야기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점점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테네는 높은 지성을 추구하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문명의 탄생지로 많은 역사적인 유적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바로 이 높은 지성을 추구하는 도시 아덴을 방문하여 전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아레오바고에서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라고 이야기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사도행전 17:30 ‘회개하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종말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재앙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앙을 통해서 사람들은 신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들은 신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선교의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파송한 선교사 숫자는 2012년 기준으로 약 25천명이며, 파송국가는 169개국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선교사역을 추진할 수도 없습니다. 헝가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터키만해도 파송된 선교사들 대부분이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선교사라는 신분을 위장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접하지 못하고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 하던 아덴처럼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절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헝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도 오래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구원자이심을 믿었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영국은 지금 어떻습니까?

16세기 영국의 메리 여왕은 영국의 기독교인들을 많이 핍박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가면 메리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독특한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이 감옥은 사방 높이가 1.4m로 매우 낮고, 지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담장을 넘어서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메리 여왕은 한 젊은 부부와 세 자녀를 이 감옥에 넣었는데, “너희들이 그래도 예수를 믿는다면 그 안에서 죽어라.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자유롭게 담을 넘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바뀌어서 예수 안 믿으려면 감옥에서 나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끝까지 그 감옥에서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영국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영적지도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장로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낙스, 세계적인 복음전도자이며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레,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등이 영국 출신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나는 오직 예수만 믿고,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들은 순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신론자들이 신은 아마도 없습니다라는 광고판을 버젓이 시내버스에 부착하고 돌아다녀도 되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파이라는 아이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해서 기독교와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을 동시에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힌두교는 그들이 모시는 신이 자그만치 33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을 33천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힌두교는 우주 삼라만상이 다 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임하실 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는 것을 과연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다시 오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임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곳곳에 보내셔서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포기해야 할까요? 그들이 여전히 우상을 숭배한다고, 그들이 여전히 살인한다고, 그들이 여전히 음행한다고, 그들이 여전히 도둑질 한다고 그들을 포기해야 할까요? 우리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된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힘써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A. W. 토저 목사님은 그가 쓴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란 책에서 진짜 그리스도인의 자기 진단법이라는 7가지 질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일곱 가지 질문 중 제일 첫 번째 질문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 질문을 전에 제 자신에게 던졌을 때는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질문해 보았을 때 그 대답은 우리가 만일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23:39-43절에 보면, 예수님 옆에 달린 강도가 비방을 하자, 또 옆에 있던 강도는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예수님께 요청을 드렸고 이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강도가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아직도 이 사실은 우리에게 그리고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강해하는 이유는 마지막 때에 나만 이 말씀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혼자만 천국에 가는 신앙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을 재앙과 그 재앙의 때에라도 회개하여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할 때에 매일 피차 권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은 이유는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듣지 못한 이유는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5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모두 아름다운 발을 소유한 사람들로 세상을 향해 회개의 복음을 증거 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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